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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 칼럼] 안녕! 에스파 - 오피니언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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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고백부터 하자. 내게 아이돌은 소화불량이다. 세계를 호령하면서 빌보드차트를 휘어잡은 K팝 스타 BTS의 노래조차 한 곡도 모른다. 그들의 칼군무를 보면 흥이 돋긴 하나 가사도 잘 안 들리고 리듬도 낯설다. 한국의 문화벤처 산업을 전공한 이장우 경북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K팝 이노베이션`이란 책 앞부분에 K팝 인지도 테스트라는 게 있다. 재미 삼아 풀어봤더니 나의 인지도는 36점. 10~20점대가 이해도가 높고 30점이 넘으면 상대적으로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이 교수와 K팝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보면 늘 핀잔을 듣는다. "그런 것도 모르냐"고.

그런데 엊그제 공식 데뷔해 내일 첫 무대에 서는 4인조 걸그룹 `에스파(æspa)`는 나의 취향을 저격했다.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붙는 표절 시비는 곁가지다. 단순한 아이돌, 단순한 걸그룹이 아니었다. 전혀 차원이 다른 세계였다. 에스파의 탄생 소식이 소환시킨 나의 기억은 3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일이었다. 2017년 12월 열린 매경 하노이포럼에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주제발표자로 나섰다. 그 자리에서 이수만 프로듀서는 머지않아 아바타의 세상이 올 것을 예견했다. 공상과학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라서 황당했지만 그렇다고 이해가 안 되는 말은 아니었다. 그때 이수만의 호언장담은 절반 정도 현실화됐다. 바로 에스파란 걸그룹을 통해.

당시 이수만 프로듀서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우리는 집 안에 인공지능(AI) 로봇을 두고 살 것이다. 아바타다. 어떤 아바타를 원할까? 나는 많은 세계인이 한국의 아이돌을 찾을 거라고 본다. K팝이 그런 세상을 만들었다"고. 그는 이를 AI와 가상현실(VR)을 기반으로 한 `초(超)거대 버추얼 제국`이라고 개념화했다.

이수만의 성공을 가져온 건 노래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자나 조용필은 못 됐다. 대신 연예기획자로 변신한다. 그러고는 내놓은 상품이 K팝.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문화상품을 탄생시켰다. 여기까지가 1단계. 1997년 3인조 걸그룹 `S.E.S`를 출범시켰고 10년 뒤 레벨을 한참이나 높여 `소녀시대`를 선보였다. 글로벌 협업을 통해 곡을 만들고 SNS만으로 마케팅을 성공시켰다. 일본에 데뷔하기 전에 소녀시대는 이미 세계적 스타가 됐다.

그의 2단계 도약은 소위 4차 산업혁명을 동반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한국의 아이돌 스타들이 아바타 로봇을 통해 세계인을 상대할 것이란 비전이 있었다. 일종의 소셜 로봇. 그의 대학 전공은 소위 `딴따라`가 아니라 엔지니어링이다. 서울대에서는 농업 기계, 미국에서는 전자공학과 컴퓨터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6년 6월 이수만은 홍콩에 `AI스타스`란 회사를 설립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지 2년 남짓 된 AI 음성 전문기업 오벤과 손잡았다. 이곳의 AI 기술과 자신이 갖고 있는 아이돌의 지식재산권을 결합해 새로운 차원의 콘텐츠 비즈니스를 준비했다. 자이언트 스텝 같은 음성과 동작을 인식하는 최고 수준의 기업들과도 협업 관계를 맺었다.

에스파는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왔다. 이름에 의미를 담았다. `아바타×익스피리언스(Avatar×Experience)`에서 따온 `æ`와 양면이라는 뜻의 영단어 `aspect`의 결합. 여기에 등장하는 4명의 아바타는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다. 걸그룹에 추가된 게 아니라 그 아바타를 위해 걸그룹 4인조가 조성됐다고 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3년 전 포럼에서 말한 이수만의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누구라도 자신의 아바타를 갖게 되는 세상. 그 아바타가 친구도 되고, 비서도 되는 세상. 그 아바타의 친근한 목소리로 뉴스도 듣고 정보도 얻는 세상.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나의 아바타는 한국의 아이돌로 제작해달라는 주문이 쏟아지는 세상. `하이! 알렉사`가 아니라 `안녕! 에스파`라고 하는 세상….

이런 세상을 완성하는 건 이수만 프로듀서만의 몫은 아니다. 그는 길을 만들었다. 길이 나면 시대가 바뀌는 법. 이수만의 버추얼 제국을 완성할 주역이 아마존이나 구글이 아닌 대한민국 벤처이길 기대해 본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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