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경자년, 한국 스포츠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키워드로 정리해본다.
즐거운 일보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가장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다.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 선수였던 최숙현과 여자배구의 고유민의 자살은 체육계에 큰 충격과 경종을 울렸다.
지난 6월 경주시청 소속이었던 최숙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가 녹취한 파일에는 팀닥터로 불렸던 운동처방사 안주현과 김규봉 감독 등이 최숙현에게 욕설과 구타 등 심각한 가혹행위가 담겨있었다. 최숙현은 어머니와의 마지막 문자에서 ‘엄마 사랑해, 그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감독과 운동처방사 뿐만 아니라 동료 선수, 선배들도 일상적인 폭행과 가해를 가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은 더 컸다. 심판대에 오른 이들은 이들에게는 징역형이 내려지고 영구제명 등의 조치가 뒤따랐다.
최숙현의 사건이 알려진 지 한달여밖에 되지 않은 8월, 여자배구 현대건설 소속의 고유민이 생을 마감했다. 처음에는 지나친 악성댓글이 원인으로 알려지면서 네이버-다음 등 주요 포털사이트의 스포츠란 기사 댓글창이 모두 중단됐다.
그러나 유족 측에서 ‘현대건설 코칭스태프의 따돌림, 배구 선수로의 앞길을 막은 구단의 사기극 때문’에 고유민이 세상을 등졌다는 주장이 나왔다. 유족 측은 지난달 박동욱 현대건설 배구단 구단주를 사기와 업무방해, 근로기준법 위반, 사자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고 사건은 여전히 조사 중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지금까지도 고통을 주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체육계도 사상 유례없는 직격탄을 맞았다. 프로농구과 배구는 지난 3월 한창 막바지 순위경쟁이 진행 중임에도 코로나19 위험이 커지면서 시즌을 중단하고 조기종료했다.
2월 말 개막하려던 프로축구는 5월이 돼서야 개막했고 경기 수도 38경기에서 27경기로 단축됐다. 프로야구는 개막만 미뤄졌을 뿐 예전과 다름없이 144경기를 하고 마쳤다.
중간중간 유관중 전환은 있었지만 대부분을 무관중으로 보내다보니 자연스레 구단들의 관중수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팬들 역시 스포츠 ‘직관’이 좌절돼 가뜩이나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풀 곳도 사라져 힘들어했다. 선수들과 관계자 역시 팬없는 중계방송용 경기만으로 스포츠 존재의 이유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무대서 뛰던 베테랑의 귀환
세계 무대에서 뛰던 베테랑 선수들이 국내로 돌아와 위안을 주기도 했다. 축구에서는 ‘쌍용’으로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이청용(울산 현대)과 기성용(FC서울)이 나란히 10여년의 유럽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유럽파 클래스’를 보여줬다.
여자배구에서는 ‘세계 1위’ 김연경이 10여년 만에 복귀해 배구 열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돌아오는 과정 속에서 ‘페이컷(샐러리캡 무마를 위해 자진해 연봉을 깎는 것)’ 논란 등으로 인해 잡음이 남기도 했다.
올해는 유독 각 종목의 전설로 여겨지는 선수들의 은퇴가 많았다. K리그 역대 최다득점(228골)의 주인공인 이동국의 은퇴가 큰 화제였다. 육아예능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도 높은 이동국이 은퇴하자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다.
또한 K리그에서는 이동국과 함께 신인왕-득점왕-MVP를 동시석권한 3명(신태용, 이동국)중 한명인 정조국도 은퇴했다.
한국 야구의 전설들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역대 최다경기(2236경기), 최다안타(2504개)의 주인공인 박용택이 은퇴했고 역대 최고의 2루수인 정근우도 유니폼을 벗었다.
또한 한화 이글스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태균도 마침표를 찍었다. 하나같이 역대 최고 선수 반열에 올라도 이상치 않을 선수들의 은퇴였기에 더욱 아쉬웠다.
농구에서는 혼혈선수로 최고 활약을 보였던 전태풍이 코트를 떠나 방송인으로 변신했다. 또한 끈질긴 수비로 유명했던 신명호 역시 은퇴했다. 배구에서는 한국 프로배구 역대 최다 블로킹(1056개) 기록을 가진 이선규가 코트를 떠났다.
코로나19 시국 속에서도 한국 체육을 이끌 유망주들의 성장이 눈부셨다. 여자 역도의 안산공고 1학년 박혜정은 장미란이 고3 때 세운 260㎏을 넘겨 들었다. 그는 이미 장마란이 고 2때 들었던 무게를 중학교 3학년 때 들어 큰 화제가 됐었다.
남자 수영에서도 인재가 나왔다. 한국체고의 황선우가 자유형 100m 48초42 한국신기록을 보유한 박태환의 48초25로 무려 0.17초나 앞당겼다. 더 놀라운 건 황선우는 고작 17세 소년이며 박태환은 26세의 나이에 한국신기록을 세웠다는 점이다.
200m에서는 미국에서도 17년간 깨지지 않은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가 18세 때 세웠던 1분45초99의 기록을 1분45초92로 0.07초 넘어섰다.
박태환을 제외하곤 그 어떤 한국선수도 자유형 100m와 200m에서 올림픽 기준 기록을 넘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고작 17세인 황선우가 박태환 이후 ‘2호’선수가 됐을 정도로 엄청난 수영 유망주가 나왔다.
프로야구에서 NC 다이노스가 창단 첫 우승의 쾌거를 이뤄냈다. 김택진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양의지를 중심으로 뭉친 NC는 정규리그 유일의 6할 승률로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한국시리즈에서도 두산 베어스를 꺾고 창단 9년만에 우승을 했다. 게임사인 모기업의 게임 아이템인 ‘집행검’을 드는 우승 세리머니는 해외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북 현대는 K리그 37년 역사에 최초의 4연패(2017,2018,2019,2020 우승)를 달성했다. 울산 현대의 끈질긴 추격을 뿌리치고 그동안 3연패가 최고였던 K리그에 역사를 썼다. 게다가 전북은 FA컵까지 우승하며 ‘더블’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반면 울산은 지난해에 이어 또 다시 준우승에 그치며 역대 최다인 9번의 준우승의 아쉬움을 안았다.
여자 골프에서는 최혜진이 대상 3연패를 해내며 한국 무대에서 최고임을 다시금 증명해냈다. 올시즌 내내 대회마다 상위권에 올라 진즉에 대상을 결정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최혜진은 “역대 대상 4연패는 없는데 제가 해내고 싶다”는 말로 2021시즌을 기대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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