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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로 세계의 심장은 다시 뛴다 - 한겨레

[한겨레S] 특집
올림픽의 감정들

희로애락 감춘 마스크 아래 표정들
‘파이팅 궁사’ 열일곱 김제덕의 희열
올림픽 9회 출전 살루크바제의 섭섭함
61년 만에 동메달 딴 산마리노의 환호

양궁 국가대표 김제덕(오른쪽)이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혼성 단체전 결승전에서 10점을 쏜 뒤 안산과 주먹을 맞대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양궁 국가대표 김제덕(오른쪽)이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혼성 단체전 결승전에서 10점을 쏜 뒤 안산과 주먹을 맞대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희열  열일곱살 김제덕은 수시로 “파이팅”을 외쳤다. 목에 힘줄이 드러나고 얼굴까지 빨갛게 상기될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였다. 다른 나라 방송 캐스터는 “저렇게 열정적인 젊은이를 본 적이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파이팅’은 그에게 마법의 주문이었다. 혼성전에서도,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양궁 남자 대표팀 최연소 금메달리스트도 됐다. 코로나19로 도쿄올림픽이 1년 연기되지 않았다면 누릴 수 없던 감격이었다. 2020년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했었기 때문이다. 양궁은 올림픽이 연기되자 올해 대표팀 선발전을 다시 했고 김제덕은 가까스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는 목이 쉬어서 개인전 때는 “파이팅”을 제대로 외칠 수 없었다. 비록 개인 32강전에서 탈락했지만 그에겐 아직 시간이 많다. #시원섭섭  첫 격발로 8점을 쐈다. 단순 8점이 아니었다. 올림픽 역사의 순간이었다. 니노 살루크바제(52·조지아)의 올림픽 최다 출전(9차례)을 공식화하는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살루크바제는 19살이던 1988년 소비에트연방 소속으로 올림픽(서울)에 처음 출전해 금, 은, 동메달을 땄다. 소련이 붕괴한 뒤에는 그의 고향인 조지아 대표로 출전했다. 동메달을 획득했던 2008 베이징올림픽 때 그는 시상대에서 러시아 출신의 은메달리스트 나탈리야 파데리나를 껴안기도 했다. 조지아는 당시 러시아와 전쟁 중이었다. 살루크바제는 이에 대해 “올림픽에 정치가 개입할 틈 따위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30일 열린 25m 권총 경기를 마지막으로 길었던 올림픽 여정을 끝냈다. 도쿄올림픽이 열리지 않았다면 그에게 이별의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후회  그는 ‘지독한 서영이’로 불렸다. 악바리 같은 근성 때문이었다. 2018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고도 ‘난 왜 수영을 즐기지 못하지’라며 자책했다. 스스로 잘 준비했다고 생각하고 참가한 생애 첫 올림픽. 하지만 개인혼영 200m 준결승에서 조 7위를 하면서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아시안게임 때 자신이 세운 한국 기록에 3초 이상 뒤진 기록을 확인한 뒤 한동안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김서영(27)은 경기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감정을 토해냈다. 펑펑 울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 눈물이 너무 아려서 옆에 있던 취재진 마음까지 아프게 했다. 김서영은 “(올림픽이) 아쉽게 마무리돼 많이 속상하다. 마음처럼 경기가 되지 않아서 저도 지금 혼란스럽다”고 했다. 그래도, 김서영에게는 개인혼영 올림픽 세계 12위 선수라는 기록이 생겼다. 수영 선수로는 적지 않은 나이 탓에 그의 ‘다음’ 올림픽은 기약할 수 없다. #환호  유럽 남부, 이탈리아 중부 내륙에 있는 산마리노는 전체 인구가 3만4천여명에 불과한 소국이다. 고대 로마공화국의 전통을 이어 집정관이 나라를 이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8494달러(외교부 누리집 기준)에 이르는 부국이기도 하다. 올림픽에는 1960년 로마 대회 때부터 참가했지만 메달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이번에 새 역사를 썼다. 사격 여자 트랩 결승에서 알레산드라 페릴리(33)가 40개 표적 중 29개를 쏴 동메달을 따냈다. 올림픽 참가 61년 만의 쾌거. 산마리노는 더불어 올림픽 메달을 딴 가장 인구가 적은 나라로도 등재됐다. 페릴리는 2012 런던올림픽 때도 메달 기회가 있었지만 슛오프 끝에 아깝게 놓친 바 있다. 동메달이 확정된 순간 그는 산마리노 국기를 펼쳐 들고 세상 누구보다도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산마리노는 이번 대회에 단 2명의 선수만 참가했다. #분노  태권도 여자 67㎏급 이다빈(25)의 준결승전은 드라마틱했다. 종료 3초 전까지 2점 차이로 뒤지다가 회심의 돌려차기로 역전승을 거뒀다. 이다빈 입장에선 최고의 순간이었지만 상대 비앙카 워크던(30·영국)에겐 최악의 순간이 됐다. 세계선수권에서 3차례나 우승했던 세계 1위 워크던은 경기 뒤 심판 판정에 강하게 항의했다. 이다빈이 발차기 전 자신을 붙잡았는데 감점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워크던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해 2016 리우올림픽에 이어 두 대회 연속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영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것은 기쁘지만 내가 훈련하면서 원했던 색깔은 이게 아니다”라며 “준결승전 때 온 힘을 다 동원해 싸웠지만 심판의 몇몇 결정이 다소 아쉬웠다”고 분하고 화나는 마음을 표현했다. 올림픽 때는 늘 잡음이 인다. 크게는 인프라 확충 등의 이유로 사회 갈등이 격하게 표출되고 작게는 선수 발탁이나 성적에 따른 책임론이 터져 나온다. 올림픽을 둘러싼 나라 간 파워게임도 상당하다. 도쿄올림픽에는 여기에 더해 코로나19라는 인류 초유의 사태가 더 추가됐다. 바깥 외출도 쉽지 않은 비정상적인 시대에 전 세계 스포츠 선수들이 모인 올림픽이 정상적으로 치러지고 있는 상황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포스트 올림픽’ 우려도 있다. 스포츠 축제 뒤에 가려져 있던, 혹은 꼭꼭 숨겨놨던 문제점이 봇물 터지듯 속속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를 또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상기해야 할 것이 있다. 도쿄올림픽이 이 적막하고 눅눅한 흑백사진 같은 시대에, 희로애락마저 마스크 안으로 감춰버린 무감정의 시대에 인간 본연의 감성을 직간접적으로 되살려줬다는 점이다. 스포츠로 세상의 심장이 다시 뛴다랄까. 올림픽의 산증인, 살루크바제의 말로 글을 갈음한다. “스포츠는 사랑을 가르쳐요. 미움이 아니라.”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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