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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웃는 얼굴로 넉넉했던 형! 이제 편히 쉬세요” - 한겨레

[유상철 형을 떠나보내며]

수비에서 미드필더·공격까지
축구 전 영역에서 발군이었죠
활동력에 패싱, 슈팅, 헤딩력도

재작년엔 투병에도 벤치 지켜
강등권 팀 기적같은 잔류 일궜죠

대한축구협회 SNS 갈무리.
대한축구협회 SNS 갈무리.
형! 벌써 보고 싶네요. 항상 웃는 얼굴로 후배들을 챙겨주던 넉넉한 형! 이제 더 이상 부를 수도 없네요. 형과의 여러 추억 가운데 2002 한·일월드컵 대표팀에서 함께 뛰던 일이 가장 많이 생각나네요. 대학생 신분으로 발탁된 나에겐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웠는데, 형이 큰 힘이 됐죠. 황선홍, 이영표 등 모교인 건대 출신 선배들이 많아서 빨리 적응했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형이 가까이 다가와 조곤조곤 이런저런 얘기해주었던 게 생각이 납니다. 월드컵 대표팀 엔트리 가운데 누가 뛰고 싶지 않을까요. 전 한 경기도 나가지 못했는데, 그때 실망한 저에게 형은 이렇게 말했죠. “영민아, 신경 쓰지 말라. 선수 생활은 길고 월드컵 기회는 또 있어. 소속팀에서 일단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해.” 그 말 듣고 제가 더 열심히 훈련했던 기억이 납니다. 월드컵 뒤 프로 신인으로 소속팀 울산 현대에 복귀했을 때, 마침 형도 일본 J리그 가시와 레이솔에서 돌아와 다시 한솥밥을 먹게 됐죠. 그해 시즌 막바지 형과 함께 8연승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그러고 보니 형도 대학 졸업 뒤 입단한 첫 프로팀이 울산 현대였고, 제가 같은 경로를 따라갔으니 이전부터 형과의 인연의 끈이 있었나 봐요. 형이 2003~2004년 다시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로 떠났고, 2005년 울산 현대에 복귀했을 때는 정말 최고의 해였죠. 수비에서 미드필더, 공격까지 전 영역에서 발군이었던 형. 그때 우리가 함께 뛰며 우승한 순간들이 아련합니다. 수비수인 저는 측면을 파고든 뒤 올리는 크로스와 길게 던지기로 힘을 보탰고, 형은 타고난 활동력에 패싱력, 킥력, 슈팅력, 헤딩력으로 못 하는 게 없었죠. 원조 멀티플레이어로서 막판 승부처에서 해결해 주고, 득점해 주던 형의 모습이 선합니다. 성격이 세심한 탓인지 후배들한테는 쓴소리도 못 하고,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네요. 대신 회식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형은 웃으며 다정다감하게 다가왔죠. 형이 2006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접고 지도자의 길을 걸으면서 좀 소원해졌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2017년 은퇴하고, 이듬해부터 축구해설위원을 맡으면서 현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죠. 월드컵 대표팀, 프로팀에 이은 세 번째 만남이라고 할까요. 확실히 프로팀 감독의 길은 쉬워 보이지가 않았어요. 성적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잖아요. 선수만 관리하면 되는 게 아니라, 구단과도 때로는 미디어와도 상대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가끔 형의 팀 경기 중계를 가면 안쓰러운 생각이 들면서도, 기껏 제가 한다는 말이 딱딱하게 “좋은 경기 잘할 것”이라고 했던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2019년 강등권인 인천 유나이티드를 맡아 끝까지 벤치를 지키면서 팀을 잔류시킨 형의 투혼은 축구팬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고 생각해요. 췌장암 4기라는 진단 사실을 공개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하지만 형은 다 내려놓고, 웃는 낯으로 선수들을 독려해 기적 같은 잔류를 일궈냈죠. 형이 떠나기 전에 남긴 큰 선물이 아닌가 싶어요. 이제 모든 게 추억으로만 남게 됐네요. 그게 안타까워서 어제, 그제는 형의 영정 앞에서 소주 한잔 따르며 울컥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언제 만나도 기분 좋은 2002 월드컵 4강 대표팀 선배님들과 함께 자리를 지킬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다들 밤늦게까지 형 추억하면서 얘기를 많이 했어요. 모두 “지도자로 꽃을 피우지도 못했다”, “너무 일찍 떠났다”, “이제 아프지 않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형, 이제 편히 쉬세요. 현영민/축구 해설위원
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의 빈소에서 축구인들이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왼쪽부터 대한축구협회 김병지 부회장, 황선홍 전 대전하나시티즌 감독,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 안정환, 현영민 해설위원, 이천수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 연합뉴스
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의 빈소에서 축구인들이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왼쪽부터 대한축구협회 김병지 부회장, 황선홍 전 대전하나시티즌 감독,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 안정환, 현영민 해설위원, 이천수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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